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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이혼예방? 시대착오적 ‘건강가정기본법’…개정논의 시작부터 ‘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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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모자의집 작성일21-05-17 15:42 조회33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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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이혼예방? 시대착오적 ‘건강가정기본법’…개정논의 시작부터 ‘전운’

 

2006년, 2015년 이어 국회서 3번째 법개정 논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이름은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떠올리게 해 일부 가정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해야 한다.”(2005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가 국가 가족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건강가정기본법 이름을 바꾸고 차별적 내용을 수정하라고 권고한 지 16년이 흘렀다. 2004년 제정 당시부터 법 이름과 내용을 두고 여성계 반대에 부딪혔던 점을 고려하면 17년을 이어온 해묵은 논쟁이다. 그 논쟁이 여의도에서 다시 시작됐다.

 

“개정안을 봤는데 왜 이것을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건강가정은 우리의 지향점인데… 저한테는 왜 그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몇 달 전부터 결코 이것은 통과시키지 말라는 의견을 주십니까?”(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사회적 논란도 많고 업무를 못 할 정도로 굉장히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개정법안이기는 하지만 축조심사가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한다.”(양금희 국민의힘 의원)

 

지난 6일 오전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17년째 답보상태인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의 험난한 길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이날 소위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정춘숙·남인순)이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막 상정됐다. 개정안은 ‘건강가정’을 전제로 짜인 법 이름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고, 혼인·혈연·입양 중심으로 정의된 가족 개념을 삭제해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소위가 열리자마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현행법에 담겨있는 ‘건강한 가정생활’ 등의 용어를 삭제하고, 개정안에 ‘누구든지 가족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표현을 넣자는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이 있는 법안의 경우에는 충분한 심사가 필요하다”(전주혜 의원)며 조항 하나하나를 따지는 축조심사는 물론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4월2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4월2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은 마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논의가 이번이 처음인 듯이 말하지만 국회에선 오래된 주제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건강가정’을 삭제하는 취지의 법안은 2006년과 2015년 두 차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한 바 있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하다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06년 9월(17대 국회)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통과된 법안은 건강가정기본법의 이름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고, 가족의 정의를 △사실혼에 기초한 공동체 △아동을 위탁받아 양육하는 공동체 △후견인과 피후견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11명의 여가위 의원 중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원 8명은 찬성 표결했고, 한나라당 의원 2명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2015년 2월(19대 국회)에는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부개정안이 표결이 아닌 여야 합의로 여가위 문턱을 넘었다. 당시 여야가 합의를 본 내용은 법명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다만 이때 여야가 합의를 본 개정안은 가족의 정의를 넓히지는 못했다. 당시 여가위 구성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8명, 새정치민주연합이 7명이었다.

 

이날 소위에 참석한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부정적 의견이 계속되자 “2004년 법이 제정됐는데 벌써 16년 전에 국가인권위에서 (법 제명 변경을) 권고했다. 법 제목 자체가 많은 사람한테 차별과 상처를 준다며 여성단체에서도 끊임없이 법 개정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응답한 국민 비율이 70%에 육박한다는 지난해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앞서 여가부는 지난달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건강가정’을 전제로 짜인 이 법의 개정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밝히며 정부 차원 개정 의지를 공식화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비례)은 “이 법안 발의 자체가 민주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한 법안이라고 생각한다. 눈치를 보거나 기득권,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서 다들 피해 가고 싶은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었을 텐데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게 우리 소위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법개정에 미온적인 국민의힘 의원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은 ‘이혼 증가와 출산 감소 등으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건강한 가족 관계가 해체되고 있다’는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취지가 낡은 만큼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시대착오적 내용이 적잖다. 제1조에서 밝힌 이 법의 목적은 ‘건강한 가정생활의 영위와 가족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한 국민의 권리·의무와 국가 및 지자체 등의 책임을 명백히’하는 것이다. 제3조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정의한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2005년 권고에서 “혼인·혈연·입양으로 형성된 가족·가정만을 적용 대상으로 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다양한 가족·가정이 실제로 있고 이런 가정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반대 개념을 쉽게 떠올리게 해 무의식적 편견이나 차별의식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개정 필요성을 밝혔다.

 

국가와 국민에게 ‘건강가정 수호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4조(국민의 권리와 의무)는 ‘모든 국민은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복지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9조(가족해체 예방)은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했고, 국가 및 지자체 역시 ‘가족 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제도와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혼 관련 가족지원 방안이 담긴 제31조에는 ‘이혼 예방’이라는 표현까지 들어있다.

 

이날 여가위 법안심사소위는 1시간20여분 동안 2개 조항 심사도 마치지 못한채 끝났다. 국민의힘 쪽은 “국민인식조사는 물론 여성·장애인단체 등에서도 개정 요구가 많다”는 여가부 쪽에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거냐. 특정 계층의 말만 들으면 위험하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김미애 의원)고 다그쳤지만, 정작 자신들이 받았다는 법개정 반대 전화와 문자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주로 보수 개신교 단체를 중심으로 나온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논의를 잘 아는 국회 관계자는 “법을 개정하면 가정 해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일부 개신교 단체 반발이 심한 상태다. 특히 이들 단체는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 등의 문구가 들어가면 동성혼 합법화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차별적 표현과 내용이 담긴 법에 대해 10년 넘게 문제제기해온 당사자 단체들은 모처럼 동력을 얻은 개정 논의 불씨가 꺼질까 염려하고 있다. 한국한부모연합 등은 지난 10일 국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가족의 건강을 가족 형태로 규정짓지 말아달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을 ‘가족들’로 칭하기 위해서는 건강이라는 말을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 한부모가족 당사자들은 칭찬과 지지를 받는 ‘건강한 가정’에 끼워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가족들’ 중 하나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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