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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에 “씻지 말고 내일 오라”는 해바라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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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모자의집 작성일22-08-25 19:05 조회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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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지난 2년 반, 센터 9곳 야간 의료공백 260일

ㅣ 피해자, 홈페이지에 ‘24시간 운영’ 믿고 갔는데

ㅣ 가보면 “의사 없어 응급채취 어렵다” 안내 

 

“이럴거면 홈페이지에 24시간이라고 써놓지 말든지요!”

지역의 한 해바라기센터에서 일하는 ㄱ씨는 센터를 찾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런 항의를 자주 듣는다. 밤 시간 ‘응급 증거채취’를 해줄 의료인이 없어 피해자를 돌려보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생식기, 항문·직장에 대한 ‘응급 증거채취’는 의사만 할 수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이런 의료행위를 해줄 의사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ㄱ씨는 “피해자에게 ‘씻지 말고 내일 오전에 다시오시라’고 안내하는데, 솔직히 내가 피해자라도 ‘우롱 당했다’‘버려졌다’는 감정이 들 것 같다”며 “야간 의료공백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사정을 설명하고 정확한 운영 시간을 피해자에게 공지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해바라기센터의 ‘24시간 운영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야간에 필수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성폭력 피해자가 증거채취 같은 시급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전문가와 현장 실무자는 정부가 성폭력 피해자 응급 지원센터인 해바라기센터의 운영 실태를 종합 진단하고 개선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4일 여성가족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2년 반(2020년 1월∼2022년 6월) 동안 전국 해바라기센터(통합형·위기지원형 32곳)에서 의료진이 없어 야간 응급 지원을 하지 못한 기간이 260일에 달했다. 32곳 가운데 9곳의 해바라기센터에서 짧게는 3일, 길게는 100일 이상 의료진 공백이 발생했다. 공백 기간이 특히 길었던 해바라기센터는 △경기북서부(명지병원) 106일 △광주(조선대병원) 85일 △서울남부(보라매병원) 23일 등이었다.


코로나19 뒤 무너진 24시간, 365일 운영 원칙

 

‘24시간, 365일 운영’. 해바라기센터가 개설 초기부터 지켜온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주로 늦은 시간에 발생하는 성범죄에 빈틈없이 대처하려면 24시간 의료·법률·상담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2020년 발생한 강간 범죄 3926건(시간 미상 사건 제외) 가운데 밤 9시~새벽 6시 발생한 사건이 53.9%(2117건)였다.

 

현장에선 24시간, 365일 운영 원칙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급격히 무너졌다고 전했다. 여가부·경찰청·지방자치단체·의료기관의 4자 협력으로 운영되는 해바라기센터는 대부분 국공립병원 안 공간을 빌려 마련한다. 다수 국공립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응급실 자체가 폐쇄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간 응급실의 야간 당직 의사가 병원 내 마련된 해바라기센터를 찾은 피해자의 응급 증거채취를 했는데, 피해자가 의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막혀버리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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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는 대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라고 했다. “응급 증거채취 시행에 문제가 없도록 인근 해바라기센터나 피해자 전담 의료병원으로 안내 등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충분한 대안이 아닐뿐더러, 피해자의 불신만 키운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여가부가 대안으로 말하는 ‘인근’ 해바라기센터는 지역에 따라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곳도 있다.

 

여가부가 다른 대안으로 거론한 ‘성폭력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은 정작 해당 기관이 피해자 전담 기관일 줄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ㄱ씨는 “증거채취를 부탁하려고 지역 내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에 전화하면 ‘우리가 전담병원’이냐고 되묻고, 지자체에서 배포한 리스트를 보여주고 나서야 인지한다”며 “심지어 피해자와 (해바라기센터 소속 간호사가) 동행해 전담병원에 가도 (의사가) 증거채취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한다고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전담병원 지정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응급키트 사용법, 성폭력 피해 응급 대응에 대한 교육 등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행정기관이 리스트만 만들고 실질적 관리나 지원을 하지 않으면 일부 전담병원에서는 응급키트가 있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리저리 ‘핑퐁’을 당한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피해자전담 의료기관을 찾아도 별 다른 조치 없이 하염없이 대기를 해야하거나, 동반하는 의료인도 없이 다른 센터나 전담병원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그렇다. ㄱ씨는 “한번은 전담병원 응급실로 연계된 피해자가 혼자 응급실 앞에서 2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참다못해 항의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응급 증거채취 가능한 곳 공유하는 시스템이라도 마련해야”

 

지켜지지 않는 ‘24시간’ 원칙 탓에 피해자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혜정 소장은 “현실적으로 24시간 원칙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경찰이나 해바라기센터 등 유관기관이 현재 어디에서 응급 증거채취가 가능한지 정보 공유를 하는 시스템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해바라기센터 야간 의료인력의 확보가 필요하지만, 여가부가 센터가 설치된 병원에 의료진 확보 등을 강제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실질 운영의 열쇠는 병원이 쥐고 있는 만큼 보건복지부와의 협업을 늘려 병원의 참여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선우 의원은 “해바라기센터에 24시간, 365일 진료 가능한 적정 인원이 유지되도록 충분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 의원은 또 지난해 서울중부해바라기센터 등이 문을 닫는 등 일부 지역에 공백도 지속되고 있는 만큼, 해바라기센터의 권역별 설치를 의무화하는 성폭력방지법(‘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조만간 대표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처 : 한겨레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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