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사회적 뉴딜이 없다 / 신진욱 > 복지소식

본문 바로가기
커뮤니티

복지소식

  • HOME
  • 커뮤니티
  • 복지소식

 

[세상읽기] 사회적 뉴딜이 없다 / 신진욱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울모자의집 작성일20-07-22 20:46 조회310회 댓글0건

본문

문재인 대통령은 7월14일에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안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디지털·그린 뉴딜을 중심으로 160조원을 투자하여 세계선도경제로 도약하고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웅대한 계획이다. 4월 말에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예고한 지 80여일 만의 야심 찬 발표였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판 뉴딜 정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은 46.5%에 불과했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도 전혀 반등하지 않았다. 정치적 효과라는 면에서 완전한 실패다. 왜일까? 시대정신을 응축해내는 강한 힘이 국민들에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 정치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대량생산 자본주의가 배태한 계급갈등, 대공황으로 인한 실업과 빈곤의 고통을 정치적 힘으로 조직했다. 그것은 자유방임주의와 노동착취, 정부 불간섭을 특징으로 한 구질서와 단절하고 만인의 자유, 노동의 존엄, 국가의 책임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구체화했다.

 

 

뉴딜 정치는 또한 소외된 민중에게 법의 무기를 쥐여줬고, 그 민중을 뉴딜 연합이라는 정치동맹의 주인공이 되게 했다. 1933년에 공정임금과 노동시간을 규정한 전국산업부흥법, 1935년의 연방 사회보장법과 노동자 기본권을 명시한 전국노사관계법, 1938년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공정노동기준법 등이 그 예다.

 

 

그러한 뉴딜 정치는 민중의 거대한 운동들과 함께 발전했다. 의사 프랜시스 타운센드가 시작하여 오백만 회원이 참여한 보편적 노령연금 운동, 민주당 의원 휴이 롱이 이끈 공유부 운동, 가톨릭 신부 찰스 코글린의 사회정의전국연합, 새로운 노동자층에 기반한 산업노조연합 등은 뉴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한국판 뉴딜’이 놓인 역사적 상황은 ‘미국판 뉴딜’과 유사하다. 시장경쟁만능 체제 위에 닥친 코로나 충격으로 장기적 경제침체와 실업, 빈곤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판 뉴딜’은 새로운 사회적·공공적 가치, 그것을 구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동맹과 사회세력을 창출해낼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선 계획안은 낡은 개발국가의 성장지상주의 관념으로 조직되었다. 현 정부가 우선 착수한다는 10대 대표 과제 중 7개가 ‘디지털 뉴딜’ 산업 육성책이다. ‘그린 뉴딜’도 산업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구성됐다. 환경단체들이 혹평할 만하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막연한 낙수 효과의 약속도 산업화 시절 그대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또한 사회적 재난을 틈타 자본을 강화하는 재난자본주의의 속성을 띤다. 디지털, 네트워크, 인공지능 신산업 육성이란 결국 국민의 돈으로 한국 자본주의를 고도화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대한 세금을 부어 창출되는 이윤을 국민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 사회협약의 내용이 없다. 게다가 디지털의 환상만 있고 디지털·플랫폼 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안은 없다.

 

 

그 결과, ‘사회적 뉴딜’이라는 중핵이 빠졌다. 고용보험 확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상병수당 등 몇몇 개혁안이 포함됐지만 공공보건의료·돌봄 확대, 노동시장 이중화 대응책, 새로운 노동 형태의 보호 등 이 시대의 굵직한 의제들이 모두 빠졌다. 사회·노동정책이 개혁의 기관차가 아니라, 체제전환 과정의 희생자를 받아서 시장에 재공급하는 그물망 정도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개발국가 성장주의와 디지털 자본주의 정신이 사회적 뉴딜을 밀어내는 이 형세가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규정한다.

 

 

2004년에 노무현 정부는 ‘한국형 뉴딜’의 이름으로 의료, 교육, 돌봄, 주거 등의 사회투자 계획을 세웠다. 이명박 정부는 ‘휴먼 뉴딜’과 ‘그린 뉴딜’을 보탰다. 전자는 중산층 정책, 후자는 저탄소 기술 신성장동력 확보 구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스마트 뉴딜’이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로 산업을 선진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에서 참여정부의 사회적 뉴딜의 기획은 후순위로 밀렸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계승한 ‘디지털·그린 뉴딜’이 전면에 배치됐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이런 담론과 정책이 과연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지, 지지층을 감동시킬 힘이 있는지, 이 시대의 소외된 계층들을 뉴딜동맹의 새 구성원으로 규합해낼 수 있을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새로운 균형을 요구한다.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출처 : 한겨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