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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실의 냉장고를 교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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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림 작성일23-10-18 15:34 조회2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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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송을 수습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원을 재개원한지도 십여년이 넘는다.
기존 모자시설의 생활실을 그대로 가져온 공간이었기에 비좁았고
그저 적응하기에 바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장실을 공용에서 개별로 전환한 것이었다.
사실 법제정 당시에는 생활실의 최소면적은 어떤 기준도 없었기에 시설환경은 열악했다.
주거기본법이 제정되기 이전이기에 주거의 최소기준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고
원마당에 조경공사가 이루어진다.
그저 우두커니 서있는 건물 앞으로
뒤로
흙을 메우고
돌을 깔고
들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 일은
가슴 한켠으로 바람이 불고,
곱은 손을 어루만지는 위로였고 안식이었다.
비로소 친자연적인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보다도
스스로 얼마나 탄식하고 좌절하고 있었는지 느끼는 과정이었고,
저 건물에 적응하기에 급급하며 살아온 것을 확인하면서
어느 순간
온전히 저 건물을 바라보며
시설에 있어
사람다운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생활자 중심으로 시설을 구상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충분한 시설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생활자의 관점과는 멀리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지어진 건물을 어찌 할 것인가
물리적인 공간의 개선은 간단치 않다.
그리하여 나무에게도 바람의 길이 필요하듯
비좁은 생활실 너머
각층의 로비에 시스템 냉방을 하고
조명을 달고 나무의자를 놓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게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인 쉼터를 개조한다.
옥상에는 오래된 정원을 꾸민다.
생활실에 TV를 설치했다.
붙박이장을 교체한다.
냉장고를 들여온다.
보잘것없는 누추한 공간을 고치고
살림살이를 하나씩 장만할 때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당초 설계도면에는 있었지만 예산부족으로 제외한 냉방기를 달았다.
생활실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정리정돈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세탁실의 타일을 새로 깔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새로 교체한다.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한다.
이중창과 단열공사를 한다.
보일러를 교체한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마침내 공동식당을 카페처럼 아늑하게 꾸미기로 했다.
저 후미진 구석탱이에 창고처럼 자리한 도서관을
계단쪽으로 이전한다.
그렇다.
시설다운 시설은 무엇일까
이번에 냉장고와 TV장을 새로 교체한다.
작은 책장 하나를 놓았다.
산비탈 동네에서
허름한 집 하나를 사서
목돈이 모이면 집을 개조하며
평생 살아온 노부부의 자족하는 삶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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