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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뒷편에는 오래된 동네 만리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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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림 작성일23-03-13 16:09 조회1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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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 철도가 개설되고,
식민지 근대화가 열리자
농사로 살기 어려운 이들은 전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이 고갯길에 몸을 의탁했다.
상자곽처럼 낡고 남루한 집들이 다닥 일렬로 붙어있고
꼬물꼬물 좁은 골목길에는 희미한 서울의 달이 비추고
저 시멘트블럭 담벼락은 누대의 걸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열여섯의 아이는 찢어진 가난에
밥 숟가락 하나 줄이자고
흘러들어와
재단일 하는 남편을 만나 아이들 낳고 긴긴 세월을 눌러앉았다.
저기 저집은
재봉틀 하나로
전국의 할머니 조끼를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고 했다.
고된 일을 하고
하루를 마감하면서
새끼줄에 동여맨 연탄을 들고 사내들은 저 비탈길을 걸은 것일까
물은 어떻게 먹고
화장실은 또 어디에 있었을까
탈렌트 김영철이었다.
월남인이었던 부모님은 대구에 살다 중학 초입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몸뚱이와 자식만이었을 저들은 어찌 살았을까
초로의 사내는
낡은 사진첩을 들쳐내듯
저 좁은 골목길에서 깊은 상념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그도 가슴치며 살아온 세월인지 모른다.
이 길
이 좌절의 비탈길을 회상하며
산비탈길에서
자기이름을 걸고 하는 허름한 이발관을 마주한다.
늙은 이발사는
혼자서
머리를 깍고
머리를 감기고
면도를 한다.
그 세월이 육십년이라 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배운 이발기술이었다.
서른일곱까지 돈도 없고 배움도 없고 남다른 기술도 없었던 그는
봇짐 하나들고 떠돌다
다시 돌아온 곳이 이곳 이발소였다.
그렇게
여기 오래된 동네에는 누더기같은 시린 삶들의
이런저런 사연들로 켜켜이 쌓였다.
바람불면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는 풀잎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서울역 뒷켠의
오래된 산비탈 동네 만리동은,
고된 도시의 생활을 견디며
좌절과 절망을 딛고
후미진 골목길을 걸어온 이들의 처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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