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원뜰은 일어나는 들꽃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작년
늦가을의 길목에서
뿌리만 남긴채 들꽃들 모두를 잘랐었다.
수확을 거두고
텅빈 들녁에 서있는 농부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고
봄비가 내리자 뭇생령들은 환희로 몸부림친다.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저 풍광은
어느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년이라는 긴  세월의 축적이 필요했다.
그러다
나는 생각했다.
저 우두커니 서있는 원건물을 온전히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그것은
원뜰을 들끛세상으로 조성하면서
문득
이루어진다.

세계금융 위기가 발발하던 해에 원신축을 준비했었다.
저기 바다 건너 이루어지는 일이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신축준비에 영향을 미칠줄은 정말 몰랐다.
건재자값이 무섭게 올랐다.
나는 당황한다.
거기다 소방법이 개정되었다.
막대한 스프링쿨러 설치비용를 회피하기 위해 건물을 두동으로 설계했지만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신축허가시에는 구청에서 도로개설을 조건으로 달았다.
그러자 건축비를 조율 중이던 시공업자는 자빠진다.
사업을 접을 것인가 고민하다
눈물을 머금고
건축비를 줄이기위해 마감재 일체를 줄이기로 결정한다.
금융비용이 치솟자 부도업체가 속출한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건축이었으니 어찌 순탄할 수 있었겠는가
시공업자는 면밀한 준비를 통해
유치권행사를 결행한다.
긴 소송으로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은 아무 말없이 그져  흉물처럼 서있을 뿐이었고,
나는 소 닭보듯 할 수밖에 없었다.
안맞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너무나 불편했고,
나는
원환경에 적응하기에 급급했다.
앞뜰에 심은 나무 모두는 고사되었고
뒷뜰의 쓰레기장은 방치된 채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렇다고  산적한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저것들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쏟아지는 비를
묵묵히
맞는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자꾸 주저앉고 싶었지만
원뜰을 조성하면서
원을 살아가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기 시작한다.
예초의 설계가 그렇지 못했음을
통절히 반성한다.
우선 생활공간이 협소했지만 쓸모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궁리한다.
TV을 놓고
수납장을 놓고
붙박이장을 교체하고 냉장고를 놓고 에어콘을 설치했다.
저기 마로니에 누런 잎이
소리없이
떨어진다.
그러자 원 로비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답답한 생활실에서 거실공간처럼 꾸미기로 한다.
시스템 냉방을 하고
조명을 달고
벽을 붙이고 쉴 의자를 마련했다.
가쁜 숨을 고른다.
다시 공유공간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공동식당을 카페처럼 꾸미기로 결정한다.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쉼터를 개조한다.
세탁실을 보수하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바꾼다.
프로그램실을 도서실을 컴퓨터실을 개선토록 한다.
또 계절이 바뀌고
분홍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옥상 조경을 한다.
원 전체의 단열을 위해 이중창을 달고 생활실 단열공사를 단행했다.
보일러를 교체하고
태양광을 설치한다.
시선은 원전체로 향한다.
심심한 붉은 외벽에
물감을 풀어 칠하듯
여러 나무를 덧댄다.

나는
비탈길 밑의
허름한 집을 사서 스스로 궁리하며 고치며 수고하며 오십년간 살아온
이른 다섯의 노인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집은 살아가는 사람을 닮는 것이다.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인 것이다.
집은 시간에 따라 노화되지만
숙고의 깊이만큼  깊어지고
사람들의 수고로 겹겹히 쌓이는 것이다.
내년을 기약하는 것이지만
이번에 원 전체의 화장실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기로 계획한다.
그것은
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