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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뜰은 자라나는 것들로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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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림 작성일23-05-22 15:25 조회2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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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은 원 어머니들의 동네숲길 걷기로 시작한다.
지난주였을까
무성했던 돌단풍을 가즈런히 자르고
웃자란 남천 가지를 쳤다.
저기 분홍빛 상록패랭이가 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과
비를 맞은 원뜰은 살아나는 것들도 북새통을 이룬다.
뒤뜰에 붉은 장미가 흰 철쭉이 진 자리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무성한 비비추와 옥잠화 푸른 잎들을 다듬는다.
그러다 보니
황매화 웃자란 가지가 들어오고
저 단풍잎이 오고
쥐똥나무 우거진 잎들도 보인다.
빛바랜 잔디밭에는
들꽃밭에는 풀꽃들이 기지개를 폈다.
그러니까 원뜰은 해야 할 일 투성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우선 파고라가 있는 주변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풀을 솎아낸다.
지난 화요일이었다.
원생활하는 가족 하나가 짐보따리를 싸고 급기야 원을 떠났다.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던 가정이었는데 막무가내였다.
마흔이 조금 넘은 어머니였다.
순간
나는 태어난지 육개월만에 새끼 일곱마리를 낳은 강아지가 떠오른다.
그 어린 것은
방금 낳은 새끼들을 핣고, 젖을 물리고, 주변으로부터 보호하고 먹이를 양보했다.
그렇게 해서 늑대 무리는 이년이 지나면 떠난지 남을지 선택한다.
호랑이들은 자기 영역을 놓고 골육상쟁이 벌어진다.
나는 난감하고 당혹했지만 어머니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가
나는 사태의 직접 사유를 점검한다.
그동안의 원생활 과정을 검토한다.
관계기관에 통보토록 지시한다.
그로 인해 원은 순식간에 긴 침묵이 흐른다.
사실 우리 원은
올해 초
여러 직원이 동시에 나가고,
조리사도 나가고 인수인계조차 원활하지 않아
어머니들이 돌아가면서 공동식사를 준비했으며
서비스 제공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일상프로그램을 필두로 겨우 발자국을 내딛었고
개인별 상담일정이 잡히고
사례관리를 위한 초기면접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생활하는 어머니들의 수문제로 집단상담이나 컴퓨터교실, 가족캠프는 뒤로 미루었다.
생활지도나 취업진로, 이주로 인한 거주상담, 자립지원 프로그램은 원활하지 못했다.
따라서 체계적인 서비스 지원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이런 것들을 조심스럽게 복원중인 와중이었다.
나는
입소면접에서부터 오리엔테이션, 개입의 정도와 수준, 어머니들과의 관계 등 원 전반의
시스템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입소면접에서 먼저 시설의 적응성을 제대로 고려했는지
반복되는 문제점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워커의 개입은 적절했는지
차근히 검토한다.
너무 보호기간에 연연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선제적인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다루기 힘든 어머니를 두고 숙고를 거듭했을 담당 워커의 고충에로 생각이 다다른다.
여러모로 올해의 공백이 사태를 키웠다.
그 와중에 관리인의 사표를 보고받았다.
이 문제도 그동안 너무 뜸을 들였다.
우리가 사회복지기관이긴 하나 직원들의 보호기관은 아니었다.
나는
바로 사표 수리할 것을 지시한다.
그렇게 앓던 이가 빠진 것이다.
나는 인사관리를 두고 정연하게 가져갈 필요성을 절감한다.
나는
앞뜰의 황매화 웃자란 가지를 치다
가슴이 답답해지자 서둘러 내려놓는다.
숨을 고르는 순간
녹음이 짙어가는 마로니에에서
소리없이
마른 잎 하나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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