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여덟의 화전민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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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림 작성일24-07-03 10:38 조회250회 댓글0건본문
팔십년전 집도 땅도 없이 떠돌던 아버지를 따라 이 곳 강원도 삼척에
정착했다.
형님이 돌아가시자 둘째인 그는
집안의 장남 역할을 하게 된다.
밭 삼천평이 일곱 식구의 생명줄이었다.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는 굴피집에서
옷가지를 넣는 옷장도 없고
거울도 없으며
단지 고물 라디오만 있는 골방에서
살고 있다.
어째서 자식과 살지 않느냐 물으니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공부도 시키지 못했는데
짐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군대에서 한글을 깨친 그는,
굴피집에 자신의 문패를 단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는 역사적인 선택이었다.
밭 한가운데 모신 아버지의 제삿날이면
가마솥에 꿇인 물로 목욕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한다.
아버지를 잘 모시면 하늘도 감동하여 그 다음해 농사도 잘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신념이었다.
같은 땅바닥에
같은 수고가 들어가더라도
농사의 결실은 같지 않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침밥상을 손수 차리고 소주 석잔을 마신다.
그래야 몸이 풀리고 일을 수월히 할 수 있다 했다.
그러면 저녁에는 왜 드시냐 하니
사람이 카피 마시듯 마시는 것이라 했다.
그는
앞산의 단풍이 곱게 물들면
그 이듬해 농사는 좋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굴피집에 어느날 등산객이 머물다 떠나면
마음이 서늘해져
얼마동안
술만 마시며 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등이 굽은 그는,
겨우 막대기를 들고
감나무의 감들을 딴다.
시인 김남주는
감나무의 남은 몇개의 감을 보며
조선의 마음이라 했다.
정착했다.
형님이 돌아가시자 둘째인 그는
집안의 장남 역할을 하게 된다.
밭 삼천평이 일곱 식구의 생명줄이었다.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는 굴피집에서
옷가지를 넣는 옷장도 없고
거울도 없으며
단지 고물 라디오만 있는 골방에서
살고 있다.
어째서 자식과 살지 않느냐 물으니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공부도 시키지 못했는데
짐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군대에서 한글을 깨친 그는,
굴피집에 자신의 문패를 단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는 역사적인 선택이었다.
밭 한가운데 모신 아버지의 제삿날이면
가마솥에 꿇인 물로 목욕을 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한다.
아버지를 잘 모시면 하늘도 감동하여 그 다음해 농사도 잘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신념이었다.
같은 땅바닥에
같은 수고가 들어가더라도
농사의 결실은 같지 않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침밥상을 손수 차리고 소주 석잔을 마신다.
그래야 몸이 풀리고 일을 수월히 할 수 있다 했다.
그러면 저녁에는 왜 드시냐 하니
사람이 카피 마시듯 마시는 것이라 했다.
그는
앞산의 단풍이 곱게 물들면
그 이듬해 농사는 좋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굴피집에 어느날 등산객이 머물다 떠나면
마음이 서늘해져
얼마동안
술만 마시며 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등이 굽은 그는,
겨우 막대기를 들고
감나무의 감들을 딴다.
시인 김남주는
감나무의 남은 몇개의 감을 보며
조선의 마음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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