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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여덟의 송창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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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림 작성일24-07-09 12:04 조회75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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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라 했다.
이장희였다.
손수 포크레인을 배워 울릉도에 자신의 마당을 가꾼 그는,
송창식의 목소리에는 어떤 애잔함이 있다 했다.
중학교 때였던가
기타가 너무 갖고 싶어
목수 조수로 일하다 직접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노래'나의 기타 이야기'이다.
그의 음악세계는
어떤 체계적인 조련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고와 노력의 결실이었다.
조영남이 부르는 팝송을 보고서 그것도 한 음악임을 깨닫는다.
그 팝송은 들으면서 직접 채보하여 읶혔다.
정훈희는 자신이 불러 히트 친 '안개'를 두고,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송창식이 부른 안개를 통해 아름답다고 느꼈다고 고백한다.
한대수였다.
중학교 때 미국에 가서 히피와 어울리며 음악을 익힌 그는
자신의 노래를 직접 작곡하여 불렀다.
거기에 충격받은 송창식은
처음부터 다시 작곡공부를 시작한다.
그것이 71년 처음 발표된 '창밖에는 비오고요'였다.
중학출신이니 정식군대에 가지 못한 송창식은
방위 생활 때 우연히 흑인 아마추어 가수의 노래를 듣고 큰 좌절을 맛본다.
노동을 하며 고단함과 시름을 잊고자 했던 그 노래에서
자신의 땅 자신의 노래가 절실했다.
그로 해서
우리의 가락
우리의 이야기인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나온다.
자신이 지금껏 추구했던 논리, 정서, 생각을 깡그리 부정하고
혼자의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그는 혼신의 힘으로 지금의 음악세계를 규정하고, 돌파한다.
78년인가는
구치소에서 자신의 연인을 위한 노래를 작곡하는데
그게 '사랑이야'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중졸 출신의 사람이 이런 노랫말을 만들었다는데 놀란다.
그 시절에 자신 주변 이야기를 담은 노래 담뱃집 아씨를 부른다.
그 시절 동네어귀 곳곳에는 담뱃가게가 있었고,
때로는 그 집 딸이 팔곤 했다.
젊은 양동근은 그 노래를 힙팝으로 불렀다.
그만큼 현재성이 살아있다.
대학시절 그의 노래'가나다라'를 듣고,
자신의 과제가 많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한계라고 봤다.
그 후에 나온 노래들은
빼어난 아름다운 노랫말에 소리를 입혔다.
가수에게 치명적인 성대결절을
매일 발성연습으로 극복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윤형주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서
그 길로 인천의 섬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문득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가 떠올랐다.
그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심한 우을증을 앓으며 탄생한 것이다.
그 대목의 하나는 이렇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댓글목록

임정환님의 댓글

임정환 작성일

송 창식은 80이 가까운 지금도 매일 하루에 거의 한 시간씩 발성 연습을 하고 새벽 4시경에 잠들어 오후 2시경에 기상한다고 한다.그는 하루에 매일 2시간을 뺑뺑 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지금의 미아삼거리에 있던 대지극장 지하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가수가 직접 열창하는 모습을 보았는 데 제목은 “우리는”이었다. 방송에 나오는 송 창식은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밤무대에서는 전혀 표정이 없고 우수에 젖어있는 모습이었다. 새삼 이 시간에 송 창식 가수를 리마인드하니 참 묘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