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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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림 작성일24-11-05 09:12 조회119회 댓글0건본문
구박사님
그래
고국산천을 이 가을에 주유하니 좋습니까
만해 선생 비석에 선 선생의 모습이 훤칠하오
만해는 스물여덟에 조선불교유신론을 썼지요
어제는 부모님 기일이었습니다.
천안에 위치한 부모님 묘소는 온통 가을이었습니다.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였던
어머니는 간난아이 둘을 데리고 만삭의 몸으로
거제도로 향한는 배를
흥남부두에서 탔어요
큰딸을 결국 영양실조로 잃습니다.
두 간난아이를 안은 스물일곱의 여인은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늠이 가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삶을
소 닭보듯 살아왔지요
그것이 무슨 민중적 삶을 지향한 이의 삶일 수 있습니까
그 때 서른 하나의 아버지는
백면서생으로 가정을 등지고 세상의 정세를 논했다 했소
시집을 와
아이들 데리고 리어커 행상을 하다 시장어귀의 터를 잡은 어떤 노파처럼
어머니는
피난 보따리를 풀어 이불을 팔아 떡장사를 하였고,
남대문 시장 어귀에 한평짜리 터를 잡았습니다.
나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부천 생활을 접고
무너진 집안을 살리고자 집으로 귀환하지요
그 때의 심정은 패잔병으로
비유했습니다.
나는 자립적 생활을 위해
사십평 규모의 독서실을 짓습니다.
바로 그 해
독서실을 개원한 그 해
어머니는 돌아가십니다.
그것이 생활력없는 아들에게 준비한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그 독서실은 실치기준 미달로 취소되어
교회로 임대되었다
창고로
결국 철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칠년후
아버님 마져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고등학교1년 때로 기억하는데
나는 그 해 겨울에
파스칼에 이어 쇼펜하우어를 읽고,
키에르케고르에 매료되었어오
늦은 겨울밤, 난로를 놓은 마루 바닥에서 아버님에게 키에르케골을 읽어드렸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아버님은
교회에서 실존주의를 갖고 설교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은
언젠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트예프스키의 카람아조프가의 형제들
맑스의 자본론을 다시 읽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두번째 징역이었지요
어머니는 심장병으로 입원하셨고,
어버님은 면회소에서
졸도하셨지요
징역방에서
가슴을 쥐어짰지요
이제
이런 기억마져 아스라합니다.
부모님과 살아온 세월보다
그렇지 않은 세월이 많아졌습니다.
오늘은
자꾸만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에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래
고국산천을 이 가을에 주유하니 좋습니까
만해 선생 비석에 선 선생의 모습이 훤칠하오
만해는 스물여덟에 조선불교유신론을 썼지요
어제는 부모님 기일이었습니다.
천안에 위치한 부모님 묘소는 온통 가을이었습니다.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였던
어머니는 간난아이 둘을 데리고 만삭의 몸으로
거제도로 향한는 배를
흥남부두에서 탔어요
큰딸을 결국 영양실조로 잃습니다.
두 간난아이를 안은 스물일곱의 여인은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늠이 가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삶을
소 닭보듯 살아왔지요
그것이 무슨 민중적 삶을 지향한 이의 삶일 수 있습니까
그 때 서른 하나의 아버지는
백면서생으로 가정을 등지고 세상의 정세를 논했다 했소
시집을 와
아이들 데리고 리어커 행상을 하다 시장어귀의 터를 잡은 어떤 노파처럼
어머니는
피난 보따리를 풀어 이불을 팔아 떡장사를 하였고,
남대문 시장 어귀에 한평짜리 터를 잡았습니다.
나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부천 생활을 접고
무너진 집안을 살리고자 집으로 귀환하지요
그 때의 심정은 패잔병으로
비유했습니다.
나는 자립적 생활을 위해
사십평 규모의 독서실을 짓습니다.
바로 그 해
독서실을 개원한 그 해
어머니는 돌아가십니다.
그것이 생활력없는 아들에게 준비한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그 독서실은 실치기준 미달로 취소되어
교회로 임대되었다
창고로
결국 철거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칠년후
아버님 마져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고등학교1년 때로 기억하는데
나는 그 해 겨울에
파스칼에 이어 쇼펜하우어를 읽고,
키에르케고르에 매료되었어오
늦은 겨울밤, 난로를 놓은 마루 바닥에서 아버님에게 키에르케골을 읽어드렸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아버님은
교회에서 실존주의를 갖고 설교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은
언젠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트예프스키의 카람아조프가의 형제들
맑스의 자본론을 다시 읽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두번째 징역이었지요
어머니는 심장병으로 입원하셨고,
어버님은 면회소에서
졸도하셨지요
징역방에서
가슴을 쥐어짰지요
이제
이런 기억마져 아스라합니다.
부모님과 살아온 세월보다
그렇지 않은 세월이 많아졌습니다.
오늘은
자꾸만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에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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